50점이어도 괜찮아.
많은 사람이 삶의 목표를 '행복'에 두지만, 행복을 좇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해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겉으로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심리를 꽤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순간, 사람은 지금의 상태를 끊임없이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한가.
왜 남들보다 덜 즐거운가.
왜 이런 감정이 드는가.
이 질문이 반복되면 현재의 순간은 사라지고, 비교와 결핍만 남습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속 “부족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행복은 결과입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관계를 잘 쌓고, 몸을 돌보고, 작은 성취를 쌓을 때 따라오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직접 잡으려고 하면, 감정은 도망갑니다.
예를 들어
“나는 반드시 행복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슬픔이나 지침을 실패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감정까지 부정하게 됩니다.
그 순간 이미 불행해집니다.
반대로
“나는 의미 있게 살겠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겠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겠다”
이렇게 방향을 잡으면, 행복은 중간중간 따라옵니다.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감정에 집착하게 되고,
가치를 목표로 삼으면 삶에 집중하게 됩니다.
수학강사의 말은 이런 구조입니다.
나는 지금 70점이다.
결혼을 하면 효율이 올라가서 90점이 되고 싶다.
이 관점에서는 결혼도, 사랑도, 삶도 전부 수단입니다.
더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행복을 “올려야 할 점수”처럼 다루게 됩니다.
안성재 셰프의 말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결혼해서 50점이 되더라도,
그 사람이면 괜찮다.
그 선택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
이건 체념이 아닙니다.
삶의 기준을 성과가 아니라 선택의 진정성에 두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행복을 점수로 보면
항상 비교가 생깁니다.
지금보다 나은 상태,
남들보다 높은 수치,
더 효율적인 선택.
그래서 “90점이 될 수 있는 결혼”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혼은 실제로 시작되는 순간부터 점수가 깎입니다.
현실은 언제나 계산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안성재 셰프가 말한 건 이것입니다.
행복은 결과 점수가 아니라
“이 선택을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느냐”의 문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선택은
점수가 떨어져도 후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의 이유가 외부 기준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좇으면 불행해진다”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행복을 높이기 위해 결혼하면
결혼이 행복을 평가하는 시험장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을 선택하면
행복은 평가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겪는 감정이 됩니다.
행복을 계산하면 관계가 망가지고,
관계를 선택하면 행복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공부도, 일도 모두 같은 원리가 동작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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